호박나물

 장마를 만나기 전인데도 수확시기를 놓쳐 줄기가 거의 말라버린 마늘을 구분했다. 쥬아를 심고 나온 통마늘과 통마늘은 가을에 다시 심어 통마늘과 통마늘로 키우기로 했고 통마늘은 아예 물에 불렸다가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풀을 잡았으니 토란과 생강의 성장속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부디 풀보다 무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무슨 약속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지 빗속에도 외출하던 남편이 부스럭거렸다. 손에는 지난번 보았던 것처럼 커다란 투명 셀로판 봉투가 쥐어져 있는 「아, 지난번 상추를 나눠준 위층에서 또 주었네. 빗속을 헤치고 주말에 텃밭에 다녀오셨대."마늘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남편이 내미는 봉지를 찾았다. 상추와 가지, 양파에 중간 정도 자란 애호박 반까지 들어 있다. 시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일요일 장마 속을 뚫고 텃밭을 다녀온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한때는 그랬다. 주말마다 텃밭에 갔던 날의 즐거움과 마음을 이웃을 통해 되새겨 본다. 상추와 가지는 물론 양파와 호박도 크게 자랐다.

상추 심 버리지 말고 꼭 먹으래."상추 잎보다 상추 잎에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지는 모른다. 남성에게 좋은 것은 상추잎보다 베짱이가 더 많은가. 상추 고갱이에 대한 상식도 없고, 상추 고갱이는 먹어본 적도 없다. 손수 돌보았으니 우산에 든 공도 버리지 말고 먹으라는 뜻 같다. 상추 심지가 굵은 쪽은 2cm가 조금 안 된다. 무엇을 먹이는 데 이렇게까지 상추 속이 굵은 걸까. 사실 나는 아주 큰 것은 무엇이든 좀 거부감이 드는 편이다

이번 상추는 비를 맞아 키가 큰 탓인지 지난번처럼 흙이 튀지 않았다. 나뭇잎만 따서 빗물이 마를 정도로 종이 위에 펼쳤다. 흙이 튀어 올라 묻어 있을 경우 씻어야 하지만 깨끗한 상태라 물에 씻어 두는 것보다는 건조시켜 보관하는 것이 더 길기 때문이다. 특히 상추나 고갱이의 조리법을 몰라서 상추나 고갱이를 반으로 잘라 상추나 고갱이를 담갔다. 날로 먹으니까 체해. 좀 삶아서 남편에게 권하기로 한다.


부러졌던 비를 맞은 상추는 물기가 마르자 부드럽고 부피도 줄어 신문지에 싸서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넣었다. 남편과 내가 앞으로 세 끼는 더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상추잎이 큰 것은 반으로 나눠 먹어도 내 잎에 가지기에는 부담스러우니 썩기 전에 상추쌈을 열심히 먹어야 한다.
호박은 반쯤 갈라져 나와 고민이다. 된장국은 맛있게 먹어도 즐겨 먹지 않는 것이 또 된장국인 것이다. 아무리 작은 뚝배기로 된장국을 끓여도 다 먹지 못한다. 된장국에는 뭐니뭐니해도 단호박이 빠질 수 없다. 그러나 남편은 된장국에 든 호박을 굴려 이리저리 굴리는 질 나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내 손으로 손가락 반 정도 컸기 때문에 25cm는 훌쩍 넘는 크기다. 호박나물이라도 만들어 먹을까 하고 먼저 호박 속을 파냈다. 껍질 부분에서 서너 겹이 될 때까지 얇게 썰었다. 겉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칼이 잘 들지 않는다. 호박 껍질이 이제 늙기 시작한 것 같다. 중육의 씨도 호박씨처럼 생겼다. 아깝다. 그냥 두었더니 늙은 호박으로 땄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애호박도 아니고 늙은 호박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의 인간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성장이 끝나면 혼자서는 들기 힘들 정도로 크게 자라는 애호박 종류로 보인다.

채썰어 소금물에 살짝 씻어 새 새우젓을 건져 호박나물을 만들었다. 맛이 없다. 푸른 껍질이 붙어 있는 쪽은 단단하고 속은 무른데,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떫은 식감이다. 맛이 부족할까 봐 참기름을 듬뿍 넣고 파와 마늘도 추가했다. 호박이 불맛을 봐도 풀이 죽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맛이 없다. 애호박 나물과는 사뭇 다르다. 이것도 2, 3번은 더 볶을 양이 남았다. 어떡하지? 볶아서 비빔밥 양념에 올려야겠다
호박나물은 애호박나물이 최고다
호박에 봉지를 씌워 애호박으로 키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애호박 키우는 사람이 나서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잘 자라는 호박의 특성상 하루만 수확시기를 놓쳐도 상품가치를 잃는다며 호박 수확시기의 피로와 보람 있는 말을 했다.
필요 가치가 있는 시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어느 시기 이상이 돼야 학습도 가능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른다. 그리고 또 어느 시기가 되면 일선에서 물러나 다음 세대의 성장을 지켜보게 된다. 호박 하나가 호박색 꽃을 피운 뒤 열매를 맺어지듯 인간도 꽃을 피웠다, 진 뒤에는 피부가 조금씩 굳어지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서글픈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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